“살면서, 내가 누구한테 피해주고 살아온 적 없거든. 근데, 이거 누구한테 피해주는 거 아니잖아. 응?”
50대 아저씨와 20대 아가씨가 연인이 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
“사랑한다면 외계인과도” 연애를 할 수 있다는데,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란다. 친구도, 형도, 형수도. 그건 잘못된 거란다.
왜?
남은(이하나 분)이가 어리니까? 스물다섯이 어린애면 대체 몇 살이 되어야 어른이 되는건가. 설마 서른이 넘어야 사랑도, 결혼도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건 아니겠지.
그럼 친구의 딸이라서?
친구의 딸과 연애한다고 해서 피해를 볼 사람이 있는가. 설사 남은이의 부모라 할지라도 본인들의 결정을 막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말이지.
안성기와 이하나의 로맨스라면, 응당 둘의 ‘나이차’에 포인트를 두고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지만,
영화는 나이차쯤 ‘아웃 오브 안중’이라는 듯, 순수하게 두 사람의 연애 시작과 진행의 감정선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영화가 재미있었던 첫 번째 포인트.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신기해해주면 좋아해요. … 막 잘해줘요.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근데 아저씬 안 그렇잖아요.”
친구의 마지막 부탁은 “남은이가 잘 사는지 가끔 확인만 해달라”는 거였다.
딱 거기까지다. 확인만. 이상도 이하도 남은이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거다.
형만(안성기 분)은 남은이에게서 이성의 매력을 느끼긴 했지만, 적당히 선을 긋고 딱 그 이상은 잘해주지 않았다.
그가 소심해서?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형만은 남은이에게 아빠도, 애인도 무엇도 아닌, ‘아빠 친구’일 뿐이니까.
사랑은, 받는 경우에 책임이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사랑을 줄 때 책임이 생긴다.
사랑을 줌으로써 상대의 테두리 안에 들어갔다면, 그 때부터 더욱 책임있는 행동이 요구된다.
사랑을 줌으로써 그는,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책임질 거 아니면, 함부로 잘해주면 안된다.
“너, 내가 카메라 고치는 게 좋대매? 근데 이젠 지겨워? 그래서 내가 작가가 되어 유명해졌으면 좋겠어?”
“꼭 작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잖아요. … 함께있어도 외로워요.”
이제 졸업을 앞둔, 미래의 변화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이 가득한 남은.
그런 남은이에게 경제적인 독립과 안정이라는 길만을 제시하는 형만.
둘은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두 사람의 연애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남은이가 그냥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평범한 사회인의 일상에 정착하던지, 아니면 형만이 그의 작업실 밖으로 나오는 방법 밖엔 없다.
“왜 아저씨는 작업대 밖으로 나오려고 하질 않아요?”
답답한 마음에 형만을 재촉하는 남은. 그러나 형만의 대답은 “나이가 들면, 뭔가 변화하기 더 어려운거야.”
사랑의 감정을 길게 이어가려면, 두 사람은 현실의 상황을 끊임없이 조정하고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변화하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남은이에게,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만 있는 형만과의 소통은 필연적으로 단절되어가게 된다.
형만도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남은이의 유학을 반대하고, 그 이유가 자신의 욕망 때문이었기 때문에, 옹졸해지기만 한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자리를 바꿀 수는 없었기에, “사랑하지만 헤어지자”는 데 더 이상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는 여운을 뒤로 한 채.
그러던 형만에게 병이 찾아온다.
무슨 병인지, 영화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어차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한 달 푹 쉰다고 생각해.”
친구는 재차 형만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50대50이란다. 큰 병이냐 아니냐 확률이. 아니다. 형만이 남은이와 다시 만날 수 있을 확률이 오십대오십이다.
관성에 따라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이, 그 틀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는 언제나 ‘휴식’이다.
삶의 쉼표를 통해, 지금껏 관성에 이끌려왔던 삶의 모습이 뭐였는지, 되돌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늘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아저씨 뭐해요?”의 질문에 “응, 나야 뭐 뻔하지. (카메라 수리 중이지).”라고 언제나 답했던 형만.
병원에서의 쉼표를 통해, 그가 작업실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면, 남은이와의 사랑스런 만남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거다.
그 확률은? 오십대오십.
………………
덧붙여.
안성기는 참 “예뻤다”.
눈에 잔뜩 힘을 준 장군 역할보다, <라디오스타>에서 보여준 옆집 아저씨의 모습이 배우 안성기에게 훨씬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이하나도 예뻤다.
안성기와의 로맨스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하는 그녀의 모습.
형만을 배려하면서도, 수줍게 사랑하는 감정선이 너무 예쁘게 잘 그려진 것 같다.
영화는 섹스신을 절묘하게 피해갔다.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자연스런 수순이었을 섹스신은 물론, 그 흔하다는 키스신마저 없었다.
아마 이것은 두 사람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 시대의 ‘형만의 형’, ‘형만의 친구’들의 불필요한 비난과 불편함을 피해가려는 절충선이었지 싶다.
‘아빠 친구와의 연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두 사람의 키스신, 섹스신을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상당수는 ‘불쾌해’했을 것이고, 일부 마초들은 ‘더럽다’며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을 것 같다.
대중성을 떠나, 개인적으로 난, 두 사람의 자연스런 키스신, 섹스신도 있었으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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