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라고 하면 TV에서 본 ‘동물의 왕국’을 떠올리거나 무거운 주제를 딱딱하고 지루하게 다룬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 왠만한 오락영화보다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것이 많다. 지난해 본 <우리학교>도 그 중 하나.
차별 받더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재일동포들은 한국어를 기본으로 하는 ‘조선학교’를 세운다. 일본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해 강제 폐쇄하거나 지원을 하지 않고, 남한 정부는 이에 무관심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나마 북한이 민족교육을 후원해준 덕분에 이 학교가 유지되고 있고, 이것은 대부분의 재일동포들이 조총련에 속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여전히 일본에서도 소외받는 삶을 살며 분투하고 있다. 이를 보고 ‘과연 힘들게 살고 있구나. 불쌍한데, 뭔가 좀 도와줄 수 없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곧 알게 된다. 그것이 단순히 ‘물질 위주’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일본에서 민족성 지키는 거 하고 자기 나라에서 민족성을 지키는 것은 조금 질이 다르죠.
내면에서만 지키고 있어도 외면에 나오지 않으면
그것이 점점 내면에서도 침투해가고 결국 일본사람하고 같이 되죠.
그런 것이면 역시 안되니까, 치마저고리도 입어야 하고 우리말도 지켜나가야 하죠.
재일동포들이 차별받는 삶을 살면서도 꿋꿋이 지키고 있는 것. 그것은 ‘조선 민족’이라는 자긍심이다. 이는 불쌍히 여길 일이 아니라 오히려 존경받아야 할 일이 아닌가. 도올 김용옥 선생은 재일조선인을 두고 ‘현존하는 독립운동가’라고 표현한 바 있다. 99년인가, 민주청년회의 고(故) 박장홍 형도 “남한에서 사회운동을 하는 것과 일본에서 조총련으로 사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난 그때 ‘언젠가 재일동포의 삶을 한번 다뤄봐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딱히 한 게 없다. <우리학교> 엔딩크레딧 후원이라도 할 수 있어 조금이나마 마음의 빚을 덜었다고 할까.)
표면적인 현상만 보고 쉽게 판단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가령 <우리학교> 학생들은 동포 2세, 3세인 까닭에 한국말을 잘 못하는 편이다.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우리 중 누군가가 그들에게 “한국말이 왜 그리 어설프니? 방금 그 말은 틀렸어.”라고 지적한다면? 정작 부끄러운 쪽은 지적받는 사람이 아니라 지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집단주의가 뭐냐 묻는다면
<우리학교>는 일종의 대안학교다. 얼핏 보기에는 학생들이 늘 운동회나 축제 준비만 하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 하냐? 저래서 대학은 가겠냐?’ 하는 생각이 언뜻 든다. 어쩌면 우리가 학력 서열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곰곰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영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바로 이 점을 <우리학교>는 ‘집단주의’ 교육으로 풀어간다.
가령 시험을 칠 때, 2인1조로 시험을 친다. 혼자 점수를 잘 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팀의 성적이다. 아무렇게나 팀을 짜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짝이 된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잘하는 아이는 못하는 아이를 가르쳐야 하고 못하는 아이는 친구의 노력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피구 경기를 한다고 치자. 우리나라 같으면 운동을 잘하는 아이에게 공을 넘겨줌으로써 팀이 승리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학교>에선 나이 어린 아이, 약한 아이에게 공을 넘겨줘서 공격하게 한다. 왜냐하면 특정 개인이 잘하는 것보다 집단이 다 함께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학생은 축구선수로 전국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것이 개인이 출세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민족 공동체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축구를 한다고 한다.
학교가 있기 때문에 축구를 할 수 있습니다.나도 그 때까지는 자기를 위해서 이긴다라는 생각이 첫번째였습니다.그러나 우리학교 와서 제일 변한 것이 ‘일도 타인을 위해서’라는 생각.그리고 그것이 아주 행복한 일이구나!
이건 몇마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몸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개인을 쥐어짜며 효율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가 나은가, 효율이 낮더라도 집단이 함께 움직이자는 사회주의가 나은가 하는 식의 논쟁을 하자는게 아니다. 다만 집단주의가 ‘집단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면,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집단주의는 인간이 사회적 개체로서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전략인 것이다.
마음의 고향이 되는 학교
<우리학교>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졸업식이다. 졸업식에서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또한 리호미 선생님께서 입원을 하셨을 때 대신하여 담임을 해 주신 신경화 선생님!
언제나 재미나는 말을 해서 우리에게 웃음을 안겨 주었지요.
선생님하고 케이크를 만들었던 시간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부모슬하 멀리 떠나고
우리들을 친아버지 친어머니처럼 돌봐 주시며
언제나 곁에계시어 고민을 풀어주신 사감 선생님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응? 당연한 모습이라고? 여러분의 기억 속 여러분의 학교는 어떤 모습인가? 적어도 내게 있어 학교란 ’가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곳’이었다. 학창생활의 추억이라면 선생님에게 맞은 기억이 먼저 떠오르고, 존경스런 스승이 누구였냐 물으면 한참 생각해도 답이 없다.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가겠지만, 학교생활을 다시 하라면 마치 군대를 다시 가는 것처럼 싫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잃어버린 학교, 우리에게는 없는 학교가 저들에게는 있다! 자본주의 세상 돌아가는 것과 너무 달라서 오히려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참교육의 현장. 영화를 보면서 처음 가졌던 연민의 감정은 이제 부러움과 질시로 변한다.
그런데 이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본사회와 학교생활 사이에서 혼란을 겪던 아이들이 이제 자본주의의 정글 속으로 내던져지는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가시질 않는다.
아참! 한국어 속에 담긴 문화적, 역사적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에게는 (번역을 해줘도) 재미있을 수 없는 영화다. 그러니 혹 영화가 재미없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영화보다는 자신의 한국적 정체성이나 교양을 의심해보시길.
3월 29일 대개봉.
관련링크 :
- 민족21 – 민족학교를 사랑한 고(故) 조은령 영화감독
- 씨네21 – 다큐멘터리 <우리학교>가 탄생하기까지(1), (2)
- <우리학교> 공식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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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입니다. 몇 년 전에 여럿이서 같이 본 기억이 새삼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