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UCC(User Created Contents, 손수제작물) 열풍’이라고들 한다. 국내의 D포털 사이트는 사이트 전면에 “우리들의 UCC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TV광고까지 한다. 외국에서는 UCC 대신 UGC(User Generated Contents)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유튜브(YouTube.com)와 같은 동영상 공유사이트가 나오면서 유포된 말이다. 사실 UCC라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인터넷 서비스 자체가 사용자의 참여 없이 이끌어 갈 수 없는 구조다. 각종 블로그도 UCC이고, 인터넷을 주름잡던 각종 패러디물도 UCC이고, N포털사이트의 ‘지식인’ 서비스도 UCC이다. 하이텔, 천리안으로 알려진 PC통신 시절 게시판에 올려진 글들도 다 UCC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UCC는 대중이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것, 그리고 권위의 벽을 쌓고 대중의 접근을 차단했던 기성 미디어가 이제는 그 벽을 허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UCC 열풍에는 UCC가 없다
그렇다면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새삼스럽게 UCC란 것을 개념화하고 마케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웹2.0′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주목하게 되고 ‘롱테일(long tail) 경제학’이 부각됨에 따라 무지랭이들의 생산력과 소비력을 주목하게 된 배경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기존의 콘텐츠 사업자들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대중이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게 함으로써 기업체 쪽에서는 ‘생산’의 부담을 덜고 ‘유통’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사용자를 우대한다는 환상을 심어주면서 기업의 브랜드가치를 높일 수 있다.
가령 N포털사이트의 경우, 수많은 사용자들이 참여하여 ‘지식인’, 까페, 블로그 서비스를 구축했다. 그것은 당연히 N사의 재산이 아니라 사용자들 개인의 것이다. 하지만 N사는 자신의 플랫폼 안에서만 검색을 가능하게 하고 정보를 제공한다. 그럼으로써 사실상 그 콘텐츠는 N사의 재산으로, 주요한 수입원으로 기능한다. 그렇기 때문에 N사는 사용자들이 외부의 콘텐츠를 불법도용, 무단전재, 스크랩하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 자사의 재산을 불려주고 사람들을 자사로 유도하는 일이니까. 그러나 정작 사용자들이 저작권 시비에 휘말렸을 때 N사가 이들을 보호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대중은 이제 ‘콘텐츠를 생산하고 착취당하고, 그것을 소비하면서 착취당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 UCC는 방금 말한 구조적 문제 이외에 내용적인 문제도 안고 있다.
우선 사용자들이 창작한(Created) 콘텐츠보다 사용자들이 베껴오는(Copied) 콘텐츠가 대다수라는 문제다. 방송물이나 영화를 재편집하고 가공한다면 그나마 양반이다. 음악, 상품정보, 사진 등 이미 공개된 소스를 가져와서 자신이 몇마디 덧붙이고 게재하면 끝이다. 과연 창의력을 가진 포스팅은 몇건이나 되겠는가? 기성의 TV 드라마를 짜깁기해서 만들어낸 콘텐츠는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가지기보다 ‘아류’와 ‘짝퉁’으로 기능하면서 원본 드라마를 홍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콘텐츠가 대다수라는 문제다. UCC는 ‘조회수를 높여야 뜬다’거나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척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방송사가 시청율에 목매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며, 상업적 목적의 기성 콘텐츠와 무엇이 다른가? 실제로 D모 포털사이트의 UCC 페이지는 시중의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별한 소신에 의해 제작되지 않는 한, UCC는 기존 지배질서와 가치관을 답습하기 쉽다. 심지어는 인터넷에 난무하는 아마추어 포르노 동영상도 UCC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UCC는 미디어, PA는 지향이념
이런 점에서 퍼블릭액세스와 UCC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대중이 미디어에 접근하고 미디어를 생산한다’는 대의는 같으므로, ‘퍼블릭액세스도 UCC이고 UCC도 퍼블릭액세스’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퍼블릭액세스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이야기,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다는 의미가 강하다. 자본과 국가권력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주류 미디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치 사회 문화적 이유로 발언권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발언의 공간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심의 거부와 편성권 확보 투쟁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1999년 신자유주의 확장에 반대하는 전세계 NGO와 독립미디어센터의 시애틀 투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공공연하게 ‘퍼블릭액세스’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오마이뉴스’나 ‘국민주방송 설립운동’도 수동적으로 비판하는 언론운동진영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언론운동으로 확장한 사례로 유사한 취지를 담고 있다 하겠다. 고로 퍼블릭액세스는 기존 지배질서와 가치관을 답습하기보다 대안적인 가치를 지향하며, 항상 주류보다는 비주류의 것일 터. 만약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다면 ‘무차별 대중이 방송을 만들기만 하면 액세스’라는 식의 빗나간 결론에 이르게 된다.
UCC가 질 좋은(혹은 인기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경쟁하는 구도 속에 놓여있다면 퍼블릭액세스는 그러한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야 할 문화적 권리이다. 미디어센터가 방송기술학원이 아니라 미디어 활동의 근거지라고 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그러니 퍼블릭액세스 작품이 개그 프로그램처럼 무작정 재미있을 수도 없고 VJ물처럼 맛집이나 홍보할 수도 없는 법. 방송사나 콘텐츠사업자의 입맛에 맞을 리도 없다. 그동안 퍼블릭액세스를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갑자기 UCC에는 쌍수를 들고 반기는 이유가 달리 있겠는가.
물론 퍼블릭액세스물이 반드시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며, UCC가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하거나 대안적인 가치를 지향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애써 퍼블릭액세스와 UCC를 구분하며 UCC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UCC에 퍼블릭액세스의 지향을 담는 것, 퍼블릭액세스가 UCC처럼 대중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미디어활동가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그래야 UCC가 복사(Copied)되거나 가공(Generated)된 콘텐츠가 아니라 진정 창조(Created)된 콘텐츠로 제 이름값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시청자미디어센터 계간소식지 2006년 겨울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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